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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Book Review

[북리뷰] 해가 지는 곳으로

by 슈리릭 2020.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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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해가 지는 곳으로

✍️ 작가: 최진영

📚출판사: 민음사


👥 등장인물

1. 도리, 미소

2. 류, 단, 해림, 해민

3. 지나, 건지


 

 

아포칼립스 배경의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추천이 많아 찾아 읽었다.

지난 번 읽은 [여행의 이유]가 중간 정도의 무게였다면, [해가 지는 곳으로]는 중압감이 느껴질만큼 무거웠다.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며 인류는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고 만다. 원인도 모르고, 그저 그렇게 퍼졌다.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어 그저 루머일 뿐이라며 대응이 늦어졌다. 그게 너무나도 우리 현실과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 몰입해 읽어내렸다.

 

도리와 미소

지나, 건지

류와 단, 해민, 해림

 

각 인물들의 시점에서 서사는 진행된다.

도리의 나이는 20대 초반, 그녀의 나이는 무척이나 어리지만 동생 미소를 데리고 험준한 이동을 계속해 간다.

나는 도리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지나도 안타까웠지만, 도리에 대한 마음이 더 컸다.

아포칼립스 세계관은 언제나 흥미롭고, 또 언제나 인간으로서 긴장하게 한다. 덧붙여 이 소설도 무수히 많은 슬픔들과 그 슬픔들 사이에 한 줄기 희망처럼 '사랑'이 있다.

 

내가 비관적인 사람인 것인지, 아니면 우울감에 젖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류의 끝에는 그저 허무와 허공만 있을 뿐이라고 믿고 있다. 인류는 너무나 많은 것을 파괴해 왔고, 자연은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부질없이 떠났고 먼지같이 사라졌다. 이후 누군가를 가슴 깊이 좋아해본 적도, 누군가를 내 몸처럼 챙겨본 적도 없다. 모래같은 건조한 감정만이 남아 하루하루를 견뎌왔고, 이제는 무감해졌다.

 

 

 

 

23p

저 사람들 어디로 가?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미소가 다시 물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

우리는……. 여름을 찾아서.

여름은 어디에 있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리켰다.

저기, 해가 지는 곳에.

미소는 혀로 사탕을 굴리며 내 손을 꼭 잡았다.

 

38p

건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전에 본 적 없는 결연함. 꿈을 꾼다는 것. 그 꿈을 나눈다는 것. 건지에게 꿈이란 전에 닿아 본 적 없는 새것, 실패해 본 적 없어 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는 첫사랑 같은 것이었다. 폐허가 된 세상의 따뜻한 바다를 상상해 봤다. 기나긴 교향곡이 끝난 뒤 오래도록 맴도는 적막처럼 어쩐지 공허하고 서글퍼졌다.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은 이미 사그라졌다.

그렇기에 건지의 감정을 관찰자처럼 관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그 감정을 살면서 두번 다시 겪을 수도, 느낄 수도 없을 것 같아서. 건지가 품었던 것처럼 좀 더 따뜻한 바다 같았더라면, 좀 더 따스하고 부드러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저 간절하기만 하고, 과욕만 부렸던 내 감정은 허무만 남았을 뿐이다.

 

 

 

책에서 소개 된 Ma rendi pur contento

 

90p

분명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데, 최선이 답은 아니란 생각이 세금 고지서처럼 주기적으로 날아들었다. 삶이 마디마디 단절되어 흘렀다. 직장에서의 나와 아이들 앞에서 나와 단을 대할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내가 징그러울 만큼 달랐다. 나라는 사람이 흐트러진 퍼즐 같았다.

 

112p

꽃은 피고 햇볕이 내리쬐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인간끼리 아무리 총을 쏘고 파괴하고 죽이고 죽여도 자연은 변함없이 자신의 일을 할 것이다.

 

 

인류가 끝나도 자연은 계속되고 또 다시 생명을 잉태할 것이라는 믿음이 보였다.

 

 

152p

인간은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지만 자연이 그 속도를 늦춰 줄 것이다.

 

171p

평생에 단 한 사람은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의 A,B,C가 아니라 완벽한 고유명사로 기억될 사람이. 어떤 이는 지름길로 나타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가장 먼 길을 지난하게 지나고 모든 것에 무감해진 때에야 비로소 거기 있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기적을 만나려면 그곳까지 가야 한다. 멀어지며 그것을 갈구할 수는 없다.

 

 

내게도 언젠가 나의 고유명사가 될 사람이 생길 수 있을까.

멀어지려 하지 않고 내가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그때쯤이면 내 감정은 과욕이 아닌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푸르른 그런 감정일까.

 

 

192p <작가의 말>

언젠가 인류가 멸망하고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이 한 줌 재로 돌아갈 그날에도 사람들은, 당신은, 우리는 사랑을 할 것이다. 아주 많은 이들이 남긴 사랑의 말은 고요해진 지구를 유령처럼 바람처럼 떠돌 것이다. 사랑은 남는다. 사라지고 사라져도 여기 있을 우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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