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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Book Review

[북리뷰] 여행의 이유

by 슈리릭 2020.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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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여행의 이유

✍️ 작가: 김영하

📚출판사: 문학동네


👥 등장인물

1. 김영하(본인)


 

 

 

주로 접속하는 커뮤니티에 이 책의 작가의 말이 유행처럼 번졌던 때가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문장에 끌려 대여 신청을 넣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 차례가 쉽게 오지 않아서, 결국 친구네 회사 사내 도서관을 이용해 3개월 정도를 기다려 겨우 읽어볼 수 있었다.

 

'여행의 이유'라는 제목답게 여행에 관한 김영하의 감정을 풀어 놓은 산문이다. 

여행을 통해 얻은 것들과 여행자의 마음이 서술되어 있다.

 

나는 사실 "20대에 여행을 갈 수 있다면 많이 가두는 것이 좋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갈 수 있다면, 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젊은 층에게 여행을 종용하며 왜 그 정도 경험도 없냐는 듯 묻는 사회적 분위기가 싫다는 것이다. 성인이 된 후 아무 곳도 안 내켜서 안 가볼 수 있는 것인데, 왜 안 가보았냐고 촌스러운 취급을 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이런 마음과 달리, 나는 여행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다. 그렇게 믿고 있었고 그 믿음은 최근에야 달라질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정의를 내린다면, 내 여행은 도피이자 도망이고, 외면이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늘 그랬다. 스무살 초반엔 제주도와 일본을 종종 갔었더랬다. 제주도는 5번 정도, 일본은 3번 정도 갔다.(이후 근대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일본을 불매하고 여행도 가지 않고 있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모종의 사건들로부터 달아나고자 서울이 아닌 먼 곳으로, 더 먼 곳으로 달아났다. 그렇게 떨구어진 타지에서 나는 타인과 섞이는 법을 배웠고, 자연을 학습했고, 흘러가는 시간 앞에 무던해지는 연습을 했다.

 

 

51p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처음 읽은 그의 글인데, 나는 참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됐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나를 알았고,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확립해갔다. 그것은 친구나 가족이 알려줄 수 없는 영역이었다.

 

 

62-63p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레고를 가지고 놀듯이 한 세계를 내 맘대로 만들었다가 다시 부수는, 그런 재미난 놀이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우선은 그들이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처음 방문하는 그 낯선 세계에서 나는 허용된 시간만큼만 머물 수 있다. 그들이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 나는 떠나야 한다. 더 머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또다시 낯선 인물들로 가득한 세계를 찾아 방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자 마음이 참 편해졌다.

 

82p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179p

조이스틱을 내려놓은 뒤부터는 아내와 함께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던 센트럴파크에 자주 나가 걸었다. 자연은 그대로 거기 있었다.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상관하지도 않았다. 다만 우주의 시간표에 따라 변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노랗게 물들며 쏟아져내리는 은행잎을 맞으며 나는 연못과 작은 둔덕들 사이를 오갔다.

 

199p

현실은 어지럽고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자잘한 일들이 끝없이 일어나고, 그중 어떤 것은 우리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개개의 사건들에 일일이 주의를 기울일 수는 없다. 현실은 줄거리가 없다. 어떤 일들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때로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다. 아름다운 별똥별이라고 생각하고 쳐다보던 무언가가 거대한 운석으로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질 수도 있다. 대단한 일처럼 생각하고 긴장했지만 별일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도 한다. 우주는 우리의 운명에 무심하며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200p

나는 누군가와 오래 알고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친구들의 부족함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법, 내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법,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몰랐다. 알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헤어질 테니까. 

 

203p

일상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해야 할 일들, 그러나 미뤄두었던 일들이 쌓여간다. 언젠가는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들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통제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느낌에 시달리곤 한다. 조금씩 어떤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생긴다. 욕실에 물이 샌다거나, 보일러가 낡아서 교체해야 한다거나, 옆집이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가 너무 시끄러워진다거나 하는 일들. 우리는 뭔가를 하거나, 괴로운 일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여행자는 그렇지 않다. 떠나면 그만이다. 잠깐 괴로울 뿐,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렇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일상은 파도처럼 밀려온다는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서글펐다.

나는 지난 10년의 시간을 지내며 참 여러군데를 돌아다녔는데, 국내 뿐 아니라 연봉이 크게 오를 시기에는 유럽 쪽도 다녀오고 최근엔 하와이도 다녀왔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이제는 내 도피를 위해 여행을 안 가도 되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나는 1월 말에 다녀온 하와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노트북이나 주변 기기를 집에 두고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스무살 초반엔 혼자이기 때문에 노트북을 챙겨가 이것저것 기록하고 그날 그날의 사진을 보정하고 현장에서의 생동감을 느끼며 소설을 썼다. 중반에는 광고대행사를 다니며 노트북을 몸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일을 해야했고, 회사의 인력이 부족해 내가 여행을 와서도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더불어 여행지에서의 업무경험은 평소보다 더 숨이 막히기도 했다.

하와이 여행을 통해 나는 노트북을 놓고 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느낌을 받았다. 그때 처음으로 내 여행은 이제 도피가 아닌 일상이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작가의 말>

요즘은 함께 사는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예전엔 ‘애완동물’이라고 했다. 

(중략) 

나는 두 단어 다 쓰지 않는 편이다. 애완은 조금 경박하게 느껴지고, 반려는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중략)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닲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중략)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환대했다면, 그리고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끌렸던 작가의 말 부분도 일부 발췌를 해보았다.

어린시절 나는 반려동물을 키운 적 있다. 처음 생긴 작은 생명에 어린 마음은 너무나 큰 것이었고, 그 작은 생명체는 쏟아지는 관심을 견디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이후 키운 강아지는 심장병이 있어 금세 떠났고, 그 다음에는 키우지 않았다.

그러한 부재들을 겪다보니 김영하의 작가의 말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이 세상을 여행할 인간과 동물들은 어쩌면 서로의 여행자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도피를 끝낸 나는 앞으로 어딜 가게 될까.

이제 도피를 하지 않아도 되니 한국에 머물러 있을까, 아니면 제대로된 여행을 즐기기 위해 더 밖으로 나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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