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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Book Review

[북리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by 슈리릭 202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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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작가: 김초엽

📚출판사: 허블


 

 

작년 11월 25일, 도서 예약 신청을 넣고 근 2개월 가량을 기다려 겨우 대여할 수 있었던 책이다.

내가 주로 접속하는 커뮤니티에서의 추천을 보고 꼭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이었고,

최근 출판 쪽이나 음악 쪽에서 제목이 길어지는 현상이 있는데-마치 웹소설처럼- 그것과 비슷한 것 같아서 신간 소식으로 처음 접했을 때는 손이 잘 가지 않았던 책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여해 읽었던 이유는 매번 책 추천을 받을 때마다 우선순위에 있었기 때문이고, 예약자 수가 많아 오기가 생겼기 때문도 있었다.

읽고나서의 감상은 "역시 읽기를 잘 한 것 같다."였다. 사람들이 추천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느꼈다.

작가가 굉장히 젊은 편이었는데, 다음 책이 기대될 만큼 문장이나 서사가 매끄럽고 탄탄했다.

 

총 일곱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단편집은, SF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내가 준비하는 소설에 담고 싶은 메시지와 일부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한 장 한 장 흥미롭게 읽어내릴 수 있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위 목차들 중 나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이렇게 다섯 개의 단편이 유독 좋았다. 

각 단편의 화자들 역시 여성들이라는 점도 좋았고, 시간과 우주, 인간의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의 한계에 대한 부분들이 너무나 좋았다. 과학이 발달하고 인류가 닿는 걸음이 우주까지 뻗어 나갈 지라도, 감정과 마음은 개개인의 안에 머물러 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48p

그녀는 얼굴에 흉측한 얼룩을 가지고 태어나도, 질병이 있어도, 팔 하나가 없어도 불행하지 않은 세계를 찾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세계를 나에게, 그녀 자신의 분신에게 주고 싶었을 것이다. 서로를 밟고 그 위에 서지 않는 신인류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로만 구성된 세계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스펙트럼]

 

96p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숨을 거두기 전 할머니는 연구노트의 처분을 나에게 맡겼다. 나는 기록의 사본을 남기고, 원본은 할머니와 함께 화장했다. 찬란헀던 색채들이 한 줌의 재로 모였다.
나는 할머니의 유해를 우주로 실어 보내 별들에게 돌려주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180~181p

“한번 생각해 보게.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 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안나 씨.”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182p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감정의 물성]

 

214p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오직 감정 그 자체였던가?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닌가? 의미가 배제된 감정만을 소비하는 것은 인간을 단순히 물질에 속박된 동물로 전락시키는 일이 아닐까? 애초에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조차도 궁극적으로 보다 고차원적인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지 않은가?

 

215p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관내분실]

 

239p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흔히 애증이 얽힌 사이로 표현된다. 딸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의 삶을 재현하기를 거부하는 딸.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는 딸과 딸에 대한 애정을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하는 엄마. 여성으로 사는 삶을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다른 세대를 살아야 하는 모녀 사이에는 다른 관계에는 없는 묘한 감정이 있다. 대개는 그렇다. 한때는, 지민도 엄마와 자신 사이에 그런 애착과 복잡한 감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66p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춤을 추고, 선과 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과 목소리와 형상을 가진 엄마. 

 

 

 

세상이 바뀌고 과학기술이 인류를 이끌어 갈지라도 사랑, 기쁨, 슬픔, 행복은 인류 안에 있다.

인간은 언제나 답을 찾기 위해 탐구해왔다. 삶과 죽음까지도 인간에겐 학술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들 조차 뇌와, 감정과, 개개인의 파동을 깊게 탐구해내지는 못했다.

세월이 흘러도 인류가 책을 읽고 아날로그에서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은, 어쩌면 해석되지 않기 위함과 고유한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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