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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Book Review

[북리뷰] 아몬드

by 슈리릭 2020.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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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아몬드

✍️ 작가: 손원평

📚출판사: 창비


👥 등장인물

선윤재 / 곤(윤이수)


 

 

그동안 두께가 제법 되는 책들 위주로 읽다 오랜만에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소설을 읽었다.

내용 자체가 크게 무겁지 않다 보니 (읽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음) 이틀 만에 후루룩 읽어 내렸다.

 

손원평 작가는 대한민국 출판계를 끌고 갈 귀한 여성작가이지만, 책을 읽고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하다 보니 그녀가 손학규 전 국민의당 의원의 딸임을 알게 되었다.

연좌제를 도입하고 싶진 않지만, 읽고난 후에는 “아, 사지 않고 대여해 보길 잘했구나.” 하는 거였다.

출신 성분이나 사람의 무결성을 따지는 것이 옳지 않은 행동이고, 나 역시도 완전무결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책 자체는 무척이나 좋았다.

인생도서는 아니지만 삶을 돌아보는 것에 대해, 그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고 사색할 수 있는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읽으면서 구병모 작가의 [아가미]가 생각났다.

어쩌면, 곤(윤이수)을 보면서 아가미의 곤이 생각이 나서였는지도 모른다.

 

 

 

주요 등장인물은 두 명이다.

 

선윤재 / 곤(운이수)

 

윤재는 어려서부터 편도체가 정상인보다 작아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무표정하고, 건조하다. 감정을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기 때문에 윤재의 엄마는 윤재에게 감정을 활자로 가르쳐 정상인처럼 사는 것을 가르친다.

 

곤은 뭐랄까, 흔했다. 흔하다는 느낌이 컸다. 평범하지만 특별했다. 특별하지만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강해지고 싶고, 세지고 싶지만 두렵고 무섭다. 윤재와 달리 감정에 흐름과 파동을 선명하게 느끼는 아이다.

 

 

Prologue
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27p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 ‘아미그달라’라든지 ‘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49p

-엄마도 주름이 있네.
내 말에 엄마는 방긋 미소를 지었고, 그러자 주름이 길게 뻗어갔다. 나는 점차 늙어 가는 엄마를 상상해 보았지만, 잘 그려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이제 엄마에게 남는 건 늙는 일밖에 없단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엔 웬일인지 웃음기가 지워져 있었다. 엄마는 무표정하게 먼 곳을 바라보다가 눈을 꾹 감았다.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늙어서 호호 할머니가 된 모습을 상상하는 거였을까. 하지만 엄마의 말은 틀렸다. 엄마에게 늙을 기회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

 

118p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134p

브룩 실즈는 젊었을 때 알고 있었을까? 늙을 거라고. 지금이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있을 거라는 거. 늙는단 거, 변한다는 거, 알고는 있어도 잘 상상하진 못하잖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지금 길 가다 보는 이상한 사람들, 그러니까 뭐 지하철 안에서 혼자 중얼대는 노숙자 아줌마라던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다리가 양쪽 다 없어서 배로 땅을 밀면서 구걸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젊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

 

216p

그때 우리는 여름의 정점에 있었다. 여름. 과연 그런 때가 있기나 했던 걸까. 모든 게 푸르고 무성하고 절정이었던 때가. 우리가 함께 경험한 게 정말로, 진짜였을까.

 

228p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낸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쳐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방황하는 곤, 상처를 받느니 상처를 주겠다는 곤.

그 옆에 선 윤재는 이야기의 흐름이 정점에 다다를 때에 곤을 지키려 제 몸을 던진다.

감정이 없던 윤재가 그렇게 변화한 건, 곤 덕이겠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단지 책이기 때문에 그나마 덜 비극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적어도 현실은 더 고통스럽고, 더 괴로웠을 테니까.

 

마냥 비관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책의 종결은 곤이 윤재를 찾아 책방 출입을 하고부터 어느 정도 희망을 좇아가고 있는 거라고 느꼈다.

 

막바지에 윤재가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있는 동안 윤재의 엄마가 9개월 만에 정신을 차렸지만, 이 또한 어떻게 보면 드라마틱한 연출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니, 어쩌면 동안 감정을 모르고, “평범 가치기준을 스스로 정의할 없었던 윤재가 남들이 말하는 평범에 가까워진 건지도 모르겠다. 소위 말하는 평범과 다소 동떨어진 윤재의 소년기를 사람들은 불행하다 치부 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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