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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Book Review

[북리뷰] 딸에 대하여

by 슈리릭 2020.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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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딸에 대하여

✍️ 작가: 김혜진

📚출판사: 민음사


👥 등장인물

1. 어머니 (책의 주요 화자)

2. 그린 (딸)

3. 레인 (딸의 연인)


 

 

어쩌다 손에 잡힌 책이었고, 큰 의미는 없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의미는 점점 커져 무겁게 내 안에 자리 잡았다.

2020년도 연초에 읽은 책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자신할 수 있다.

어쩌면, 현재 내 상황과 맞물린 선택의 기로에서 여성인 내가 고려해야 할 무수히 많은 것들에 대해 입장만 바꾸어 서술한 느낌이라 더 강하게 동조하고 공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딸에 대하여는 요양병원 보호사로 일하는 어머니와, 시간제 대학 강사인 딸의 서사를 다루고 있다.

딸은 동성애자로, 독립 후 어느 날 묵돈이 필요하다며 어머니의 집에 연인과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어머니는 딸의 조금은 다른 모습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우리 엄마를 생각했다.

우리 엄마의 인생은 참 기구한 편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나 또한 기구한 편이고, 지금도 데굴데굴 굴러가는 돌맹이처럼 알 수 없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엄마는 선생님이 꿈이었고, 지방의 유명한 사대부고를 나왔다.

그러나 IMF 이후 장녀라는 무겁고도 육중한 책임 앞에 대학을 포기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외가를 일으켜 세워야 했던 것은 외할아버지나 삼촌들이 아닌 작은 몸으로 야무지게 손을 그러 쥔 엄마였다.

엄마는 미싱부터, 자잘한 세무 업무, 목공 디자인 등을 거쳐 지금은 자그마한 제조회사에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엄마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눈치를 보면서도 아직 정년까지 일해야 한다며 성치 않은 몸으로 매일, 몇 십년을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전공을 두 번 바꾸었고, 직무를 세 번 바꾸었다.

고등학교 전공은 조소로, 고교시절 재수생보다 더 실력이 좋다며 극찬을 받았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십몇 년 전에 한 조소를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취미로라도 남기고 싶어할 정도로 조소는 내 안에서 굉장히 큰 부분이다.

공부도 잘 했다면 전공이 두 번이 될 일은 없었겠지만,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다 공부가 시원찮아 결국 나는 재수를 하지 못하고 전문대를 가야 했다.

미술적인 요소, 나 자신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요소, 내가 살아온 삶과 아픔, 고통, 희열, 슬픔, 기쁨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일들을 찾다가 홍보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마케팅 대행사를 거친 후 인하우스 기획자가 되었다.

 

나는 확신이 없다.

내가 언제까지고 기획을 할지, 언제까지고 사회의 밥을 먹고 살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어린시절부터 잦게 바뀐 환경 때문도 있고 내가 여성이기 때문도 있다.

가난한 현실 앞에서도 무너질 수 없었던 것은 스스로의 가능성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 때문에 나는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었고, 돈 앞에 맹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무릎을 꿇어야 했다.

 

 

8p

젊은 시절엔 이런 면 음식을 즐겨 먹었다. 세 끼 중 한 끼를 꼭 면으로 해결할 정도였다. 면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는 먹고 나서가 문제다. 좀처럼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부룩한 배를 어루고 만지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금 몸을 일으키는 짓을 얼마나 반복해야 하는지. 즐거운 일들을 하나씩 잃어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말이다.

 

 

이십 대 초중반에는 나 또한 그랬다.

밀가루로 된 것을 좋아해서 하루에 한번 이상은 그것들을 먹고 좋아했다. 어딘가에 맛집이 생겼다고 하면 친구와 그 곳에 가서 메인 메뉴를 주문해 먹을 정도로 식도락을 즐겼다.

하지만 서른을 갓 넘은 나는 이제 밀가루를 먹으면 화자인 어머니처럼 속이 더부룩하다. 잠에도 들지 못할 만큼 배에 가스가 차오른다. 불편함에 몸을 뒤척이다 잠때를 놓치면, 새벽 두세 시가 되어 간신히 잠에 든다. 

 

 

22p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어쩌면 이건 늙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인지도 모르지. 이 시대. 지금의 세대.

 

68p

나는 좋은 사람이다.
평생을 그렇게 하려고 애써 왔다. 좋은 자식. 좋은 형제. 좋은 아내. 좋은 부모. 좋은 이웃. 그리고 오래전엔 좋은 선생님.
정말 힘들었겠구나.
나는 공감하는 사람.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
나는 응원하는 사람.
다 이해한다. 이해하고말고.
나는 헤아리는 사람.
아니 어쩌면 겁을 먹은 사람.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 뛰어들려고 하지 않는 사람. 깊이 빠지려 하지 않는 사람. 나는 입은 옷을, 내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사람. 나는 경계에 있는 사람.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표정을 하고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사람. 여전히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은 걸까.

 

108p

어떤 말들은 곧장 내 안으로 들어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것들은 육중하고 거대한 방파제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그때부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끝내 소화되지 않는 말들. 소화할 수 없는 말들.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말들.
나는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 버린다.

 

116~117p

그러나 눈을 감으면 뭔가가 와르르 밀려오는 기척이 생생하다. 나도 모르게 아주 작은 나뭇조각을 건드리고 그것이 쓰러지면서 다음, 그다음 서 있는 거대한 것들을 차례로 쓰러뜨리며 물결처럼 와르르, 와르르, 몰려오는 게 분명히 느껴진다.

 

129p

마음은 왜 항상 까치발을 하고 두려움이 오는 쪽을 향해 서 있는 걸까.

 

139p

적의와 혐오, 멸시와 폭력, 분노와 무자비, 바로 그 한가운데에 있다.

 

146p

송곳 같은 것이 관자놀이를 찌르는 것 같다. 아니, 뾰족한 뭔가가 머릿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 같다.
가시 같은 것, 못 같은 것.
나는 내내 그런 걸 키우고 품어 왔는지 모른다. 그런 것들이 외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나를 지켜 줄 거라고 생각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불러오는 건 이토록 끔찍한 통증이다.

 

149p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을 수 있는 거리. 그러나 나는 이 애들이 나로부터 얼마나 먼 곳에 어떤 모습으로, 어디를 딛고 서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뚜렷해진다. 이 애들은 삶 한가운데에 있다. 환상도 꿈도 아닌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이 애들은 무시무시하고 혹독한 삶 한가운데에 살아 있다. 그곳에 서서 이 애들이 무엇을 보는지, 보려고 하는지, 보게 될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밥알은 좀처럼 삼켜지지 않고 나는 울컥거리며 치솟는 뜨거운 것들을 계속 삼킨다.

 

184p

그 애는 제 딸이 데리고 왔어요. 저 애들은 친구가 아니에요.
하지만 내 말은 늘 거기에서 멈춘다. 내뱉을 수 없는 말들, 결코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말들. 내부에 남은 말들이 덜그럭거리고 부딪치며 상처를 내는 것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

 

188p

그러나 내가 상상한 순간은 끝내 오지 않는다. 그런 순간은 늘 너무 이르거나 늦게 도착한다.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기다리다가 포기하게 만든다. 

 

195p

여전히 내 안엔 아무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내가 있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내가 있고,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내가 있고, 또 얼마나 많은 내가 끝이 나지 않는 싸움을 반복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일일이 다 설명할 자신도, 기운도, 용기도 없다.

 

197p

한숨 자고 나면, 아주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일이 다 거짓말처럼 되어 버리면 좋겠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조롭고 수월한 일상. 그러나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 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면 고집스럽고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 하니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단순히 딸과 어머니의 서사가 아니다.

이것은 여성들의 서사다.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나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을 것이다.

남성들의 전유물인 고위직급자가 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또 직무를 바꾸고, 직업을 바꾸고, 그러헥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돈에 얽매여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딸에 대하여]는 여성들이 처한 사회의 처절한 상황과 함께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는 양성애자다. 남자에게 고백을 받아본 적 있고, 여자에게 고백을 받아본 적도 있다.

남자와도 사귀어 봤고, 여자는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고백까지만 받아봤다.

스스로 거리낌은 없지만 나 자신은 아직도 나와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만 하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만이 아니다. 나는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나 스스로가 각박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누군가를 먼저 생각해 배려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이 '나밖에 모르는' 그런 태도들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자신만을 위하는 태도들로 지난 오육년 가까이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은연 중 상처를 내왔다.

 

내 치부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이해해주는 친구를 통해 개선해 나가고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끊임없이 소리내고 말하고 이해하려 한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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