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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Book Review

[북리뷰] 불로의 인형

by 슈리릭 2020.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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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불로의 인형
  • 작가: 장용민
  • 출판사: 엘릭시르

 

'귀신나방'을 읽고 책을 넘어서 작가의 상상력이나 필력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장용민 작가의 다른 책을 빌려 읽었다.

이번엔 불로의 인형이고, 다음엔 궁극의 아이를 읽고 리뷰를 남기려 한다.

 

책의 서두는 중국 진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물음표로 시작한 서두. 그렇게 프롤로그 격의 이야기가 지난 후, 정가온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가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다. 그는 유명 갤러리인 연백의 수석 큐레이터로, 미술사는 물론 감정에도 능한 인물이다.

궁극의 아이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장용민 작가의 전공이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는 점에서 미술사나 미술감정, 작품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작가의 눈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나 역시 짧게나마 미술에 몸을 담았었기에 읽어내리는 문장들마다 실체를 마주하는 듯 생동감이 느껴졌다.

 

큐레이터인 정가온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외아들로, 불우한 유년시절과 달리 성공한 서른 중반의 남성이 되었다. 물론 소설 전개가 그걸로 끝이었다면 타이틀이 무색했겠지만, 그는 곧 병원 검진에서 췌장암 진단을 받게 된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단 3개월.

허무와 공허만 남은 그에게 어린 시절 자신과 어머니만 버리고 집을 떠난 아버지의 부고가 들린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53p

무슨 일이 있어도 설아를 지켜라. 마지막 부탁이다.

 

 

듣도 보도 못한 설아라는 이름에서 가온은 치미는 짜증을 감추지 못한다.

가온의 아버지는 인형극을 하는 인간문화재로, 남사당패 꼭두쇠로 살아왔다. 그의 죽음에 가온은 상복을 입고 안동까지 넘어간다.

거기서 권사평과 그 외 인물들을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속도감을 더해간다.

 

 

103p

가온은 상자를 꺼내 밝은 창가로 가져갔다. 그것은 이제껏 본 적 없는 특이한 상자였다. 크기는 가로세로 오십 센티미터 정도로 짙은 진홍빛 옻칠이 되어 있었는데 얇게 자른 나무를 옷감을 짜듯 엮어 만든 귀한 상자였다. 그리고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물건이었다. 고대 왕족이나 귀족들이 귀금속 따위를 보관하는 데 사용했던 장인의 작품이 분명했다. 직업적인 본능이 발동하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가온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안에 들어 있던 건 한 통의 편지 봉투와 인형이었다. 가온은 먼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질 좋은 납전지로 된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납전지로 된 편지는 100년에 한 번 열리는 삼우회의 초대장으로, 초대장과 함께 인형을 손에 얻게 된다.

삼우회의 회합은 가온의 아버지인 정영후의 부고 8일 후 중국 서안의 선상 위. 8일 동안 가온은 인형을 둘러싼 한중일의 세 집단들에 쫓기게 된다.

인형의 비밀이 한 껍질 씩 벗겨질수록 가온의 목숨도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초대장, 인형과 함께 있던 설아와 삼우회의 회합 날 전까지 인형의 역사와 불로초에 대한 비밀을 풀어나간다.

 

 

135p

의식을 놓기 직전이었다. 문이 열리며 설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가온의 위기를 느낀 듯 주저 없이 달려오더니 가온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대뜸 가온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마치 인공호흡이라도 하려는 듯. 가까스로 의식을 붙들고 있던 가온은 아무런 대응도 못 한 채 설아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인공호흡이 아니었다. 설아는 가온의 입에 입술을 대더니 자신의 침을 흘려 보냈다. 설아의 맑은 타액이 입술을 타고 흘러들었다. 그것은 에로틱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기묘한 체험이었다. 어린 시절 고열에 시달리던 아들에게 어머니가 불러 주던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고통을 달래 주었다. 서서히 통증이 가라앉자 의식이 돌아왔다.

 

 

사실 나는 여기서부터 설아의 존재에 물음표를 띄웠다.

불로를 담은 인형과 설아의 타액, 그리고 가라앉은 췌장의 통증. 더 읽어보자는 심산으로 나도 퍼즐을 맞추듯 페이지를 넘겨나갔다.

 

 

166p

창애에게는 여섯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해. 염계, 현성, 석자촉, 수겸, 마운, 그리고 진강. 이 여섯 명의 제자들은 창애가 죽자 뿔뿔이 흩어져서 몇 명은 왜, 즉 일본으로, 또 몇은 한반도로 향했다고 전해져. 그들이 왜 험난한 여정을 감수하면서까지 흑조를 건너 일본까지 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창애의 죽음 직후 창애의 인형을 나눠 갖고 흩어져.

 

406p

이십 대 후반의 남자를 그린 것으로 선한 인상에 여인을 떠올릴만큼 고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늘게 처진 눈매에선 푸근한 덕이 느껴졌고 코는 오똑했으며 부드러운 입술을 지니고 있었다. 수염을 기르지 않은 턱선은 계란처럼 동그스름했고 숱 많은 머리를 삼층으로 쌓아 올려 끈으로 동여매고 있었다.

 

 

인형의 비밀에 다가설수록, 가온은 천재화가였지만 꼽추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창애의 자식인 담멸로 향하게 된다.

설아의 인상과, 담멸의 인상은 무척이나 유사해서 리뷰에 따로 발췌를 해보았다.

 

 

483p

한 많은 꼽추가 꽃노래를 부르노라
낙양 높은 누대에서 흰 구름에 바치네
저 멀리 바다 건너 선약이 있으니
삼가는 마음으로 작은 배 떠올라 떠가노라
하늘의 신성한 이여 어찌 우리를 도우려오
천 길 파도 건너 신선의 땅이네
눈 덮인 영주는 가도 가도 멀어라
불로약을 못 얻으니 황제의 진노 쌓이고
죽기로 돌아가려 하나 사람을 먹는 바다라
꼽추는 탄식하지 않으리 내게 자식 있으니

 

521p

“제자를 만난 순서.”
무마시의 말에 의하면 창애는 한꺼번에 제자를 만나지 않았다. 그는 한 명씩 따로 만났고 인형도 각자에게 건네줬다.
“제일 먼저 석자촉을 만나 신선 인형을 줬어. 다음으로 마운에게 담멸 인형을, 수겸에겐 미소노를, 진강에겐 진시황, 그리고 염계에게 자신을 본뜬 창애 인형을 줬지. 마지막으로 수제자인 현성에게 서복 인형을 주며 두 번째 비밀을 알려 줬어.”
가온은 창애가 제자를 만난 순서대로 숫자를 배열하고 글자를 재조합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타났다
.

신선의 몸(정수)은 불로장생의 약이라!
불사를 구한다면, 얻어서 나를 먹어라.

 

 

후반부로 가니 하나 둘 비밀이 풀리며 창애가 불로의 몸이 된 이야기와, 그가 서복에게 일부러 붙잡히게 된 사실을 알게 된다.

창애가 수제자인 현성에게 남긴 두 번째 비밀에 따라 현성은 꼽추로 태어난 담멸에게 창애의 몸을 먹이게 되고, 담멸은 불로의 몸을 얻고 꼽추가 아닌 정상의 몸을 찾게 된다.

 

 

551p

“나는 꼭두쇠의 딸이자 꼭두쇠의 아들이고, 가난한 자들의 의원이자 황후의 병을 고친 어의야. 그리고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친 꼽추 아버지의 딸이야.”

 

552p

순간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담멸의 초상화가 펼쳐지며 설아의 얼굴에 오버랩됐다. 선한 인상에 부드러운 눈매와 오똑한 코, 계란처럼 동그란 턱과 숯처럼 검은 머리. 

 

 

막바지에 설아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선상위에서 자신을 쫓던 거대 조직의 수장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다 죽게 된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가온에게 자신의 몸을 줄수 있다고도 하는데, 가온은 거절한다.

함께 배 위를 탈출해 살자는 가온을 뿌리치고, 불로의 인형들과 자신의 몸까지도 전부 불태워 버릴 작정이었던 설아, 즉 담멸은 삼우회의 회합이 열린 배 위에서 타오르는 불 속에서 자신의 몸을 연소한다.

 

8일 동안 많은 일이 있던 가온은 그 후 한국으로 돌아가 수술대에 오르는데,

설아의 타액 때문인지, 그와 맺었던 육체적 관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암은 전이가 없었고 암세포만 제거하는 수술을 하게 된다.

 

"하루를 천 년처럼, 천 년을 하루처럼"이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책은 마무리가 된다.

조금 아쉬운 마무리였는데 불로에 대한 욕심의 끝엔 결국 허무만 남지 않는가, 하는 그런 결말이기도 했다.

귀신나방을 너무나 강렬하게 읽었던 탓인지, 불로의 인형은 뭐랄까... 배경에 대한 설명이 너무나 길었다. 물론 그게 필요한 요소라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중일 세 역사가 미술품에 엮여있고 그것들에 더해 세 나라의 조직이 또 엮여있다 보니 어려울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일주일에 한권 정도 읽는데, 2주가 걸렸으니 말 다한 거라고 해야겠지.ㅎㅎ

그래도 무척이나 재밌고 흥미로운 소재라 장용민 작가의 다음 책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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