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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Book Review

[북리뷰] 귀신나방

by 슈리릭 2019.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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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귀신나방
  • 작가: 장용민
  • 출판사: 엘렉시르 (문학동네 임프린트)

 

추천을 받았고, 마침 도서관에 대여 중이 아니라 바로 빌려 읽었다.

뭐랄까. 내용을 무어라 설명해야 좋을 지 머릿속에서 아직 정리가 되지 않는 그런 글이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여운이 엄청난데다 흡입력도 대단해서 촘촘한 편집의 406페이지나 되는 글을 4일 동안 전부 다 읽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르게 속독해 나갔는데, 내용이 내용인지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한때 퓰리처상까지 받을 만큼 전도유망한 기자였던 크리스틴은, 어느 날 오토 바우만이라는 사형수의 특별 면회 요청을 받게 된다.

그는 수많은 관객이 모인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에서 어린 소년을 살해하는데, 살인범 오토 바우만의 입에서는 상상치도 못한 이름을 듣게 된다.

 

과연 그녀는 그의 입에서 어떤 이름을 듣게 된 것일까.

나는 책을 빌리면 표지 디자인을 먼저 감상하고 목차를 읽어내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귀신나방이라는 표지는 퍽 판타지소설 같아 보였는데, 책 뒷면의 간략한 줄거리를 보고 금세 흥미가 일었다.

 

목차를 쭉 살펴 읽고, 대수롭지 않게 한 장 한 장 읽어 내렸다.

소설은 액자식 구성으로 사형수인 오토의 설명에 따라 조금씩 속도감 있게 진행 되어갔다.

히틀러에 대한 서사가 면밀한데다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등장해 솔직히 말해 읽는 내내 소름이 끼쳤다.

정말로 히틀러가 요제프 멩겔레에 의해 뇌이식 수술에 성공해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면? 그리고 자본주의와 엄청난 권력의 배후에서 세상을 조종하고 있다면?

실존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죽음을 이렇게 잘 엮어낸 소설은 거의 처음이었다.

 

신기하게도, 한국인 작가인데 책에서는 내내 미국인, 독일인, 아르헨티나인, 체코인 등이 등장한다.

한편의 외국 판타지 영화 같았던 엄청난 스케일과 서사에 읽는 내내 감탄했는데, 복선과 반전에 쉴 틈이 없었다.

오죽하면 회사에서 일하는 내내 힐끔 거렸겠는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크리스틴이 세상에 히틀러의 죽음에 대해 공표하는 줄 알았더랬다.

하지만 증거는 부족하고, 그녀가 찾아 떠난 곳에서 그녀는 다소 인위적인 현장과 오토 바우만의 석방에 석연찮은 부분을 발견하고 의심한다.

사실 나는 그녀가 의심하기보다도 먼저 자신의 글을 세상에 알리길 바랐는데... 그랬다면 이 글은 용두사미였을 지도 모른다.

오토 바우만이 사형에 처해지기까지 남은 기간은 이틀.

크리스틴이 들은 이야기들은 전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들이었다.

모든 것을 그녀에게 넘기고 죽음의 뒤안길로 사라진 오토 바우만의 긴 서사와, 그 뒤에서 교묘하게 조종한 히틀러.

 

사라진 증거와 함께, 그녀가 찾은 칵테일 바에서 그녀가 주문한 '기억상실증'과

그리고 그 칵테일을 내어준 바텐더 한스.

 

크리스틴은 오토의 죽음을 한스에게 알리며 누구도 믿지 못할 이야기라며 말문을 연다.

그리고 여기서, 한스는 그녀가 놀랄 만한 질문을 던진다.

 

 

크리스틴이 턱을 괴며 말했다. 그러자 바텐더가 입을 열었다.

"귀신나방이라고 들어본 적 있어요?"

순간 크리스틴은 숨을 멈췄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짤깍짤깍. 칵테일 셰이커 흔드는 소리가 이어졌다.

"귀신나방이라는 나방이 있습니다. 이놈은 인적이 드문 산속, 벼락을 맞고 부러진 나뭇등걸에 서식하죠. 전 세계적으로 버마 북쪽 산림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휘귀종이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놈을 끔찍하게 생각해요. 왜냐면 몰골이 흉측하거든요. 날개는 지저분하고 더듬이는 소름 끼칠 만큼 커다랗죠. 몸에서는 찐득한 점액질이 연신 흘러내려요.

귀신나방에게는 신비한 습성이 있습니다. 귀신나방은 우기에 산란을 해요. 산란기가 되면 변신을 하는데 날개를 덮고 있던 지저분한 갈색은 비단처럼 반짝이는 보랏빛으로 바뀌죠. 생애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던 귀신나방을 산란을 시작한답니다. 그리고 이때 녀석의 괴이한 능력이 나타나죠. 산란을 마친 귀신나방은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이면 숲속을 분주하게 날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정말 굉장한 광경이에요. 보랏빛 요정들이 추는 춤처럼 아름답죠.

그렇게 무리 지어 날던 귀신나방은 천둥이 가까워오면 약속이나 한 듯 한 나무에 내려앉는답니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 나무에 벼락이 치는 거예요. 꽈르릉. 녀석들은 벼락을 예측하는 능력을 지녔고 마지막 순간 죽음을 향해 비행하는 거죠. 그리고 얼마 후 우기가 끝나면 아침 햇살과 함께 부화한 유충들이 나타난답니다. 녀석들은 어미가 생을 마감했던 나뭇등걸로 모여들어요. 그리고 그곳에 둥지를 틀죠. 또다시 반복될 생애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며."

드디어 셰이커를 흔들던 손이 멈췄다. 그와 함께 주위의 시간도 멈췄다.

잠시 후 기억상실증을 담은 푸른 액체가 잔 위로 쏟아졌다.

 

 

그랬다.

귀신나방은 히틀러의 암호나 다름없었다.

귀신나방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크뢰멜도, 아디헌터인 바우만도. 그런데 청년은 어떻게 알았을까.

크리스틴이 뒤늦게 깨닫고 퇴근한 바텐더를 쫓아 나갔지만, 그는 이미 안개 속으로 사라진 채였다.

(청년은 린츠에서 왔다고 했다.)

 

작가가 서울대 미대를 나와 영화감독을 하고 싶어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참신하고 치밀한 구성, 풍부한 지식, 그리고 오밀조밀한 사전조사에 감탄했다.

 

작가의 글이 너무나 재미있어,

그가 쓴 다른 소설인 궁극의 아이도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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