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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Book Review

[북리뷰]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by 슈리릭 2019.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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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 작가: 민지형
  • 출판사: 나비클럽

 

30대 페미니스트 여성의 연애는 거의 '워킹데드'다.

슬프게도 2019년 한국의 이 상황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이다. 파트너가 데이트 폭력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별을 말했을 때 나와 가족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 앞에선 다정하게 웃는 이 남자가 단톡방에서는 몰카를 돌려보며 낄낄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는가? 가슴과 성기뿐 아니라 뇌도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종종 부정당하는가? 나의 쾌락에는 관심도 없는 일방적인 섹스 후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갑갑함을 느끼는가?

비 오는 봄밤에 버팔로떼처럼 몰려오는 외로움이나 '독거노인으로 쓸쓸히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세상의 협박 역시 현실이기 때문에,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현실 속에서 나는 자주 정신분열을 느낀다. 아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그런 현실적인 고민과 방황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그려보고자 했다.

 

책의 뒷면에 적힌 작가의 말이다.

워킹데드라는 말이 너무나 깊게 와닿았다.

 

여성들은 항상 긴장해야 하고, 불안에 떨어야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밤 늦게 놀고 귀가하는 택시 안에서 일면식도 없는 택시기사를 의심하고, 그가 조금만 화를 내거나 예상경로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면 촉각을 곤두세웠다. 술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잔뜩 만취한 날에 옆 테이블과 조인을 해서 놀자던 날이 있었는데, 그 날도 중간에 반강제로 이탈하게 되는 친구가 없도록 한 두명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했다.(간혹 그런 놈들 중 하나가 친구 하나와 애프터를 하겠다고, 마음에 든다고 데리고 나가 모텔로 가려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이 말하는 나는 술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말그대로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나 스스로가 불편함을 자각하고난 후, 그런 것들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없게 되었다.

 

밤 늦게 택시를 타는 것도, 술자리에서 옆자리를 살피게 되는 것도, 외부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일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잘 읽히고 공감이 갔다.

김승준은 지극히 '한남'이고, 주인공인 화자는 지극히 '페미니스트'였다.

 

특히나 연애와 결혼이 주된 지표가 되는 30대의 삶이 내게는 무척이나 공감됐다.

왜 우리는 연애를 반드시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연애를 하지 않으면 도태 되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결혼도 마찬가지다. 하지 못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그저 선택으로 존중해주면 안되는 걸까.

인생의 끝이 결혼도 아닌데 우리나라는 왜 결혼이 당연한 통과 의례인 양 말하고, 눈치를 주는 것일까.

 

솔직히 읽는 내내 '승준'의 한남스러움에 기가 찼다. 정확히 말하면 한남스러움이라기 보다는 결혼의 숙주처럼 구는 한국 남자들의 기본 정서에 기가 막혔다.

 

화자는 한남 '승준'과 헤어지고 아일랜드 행을 선택한다.

나는 그게 참 다행인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논리적으로 누군가의 2n년 인생, 3n년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화자도 내심 인지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승준'을 바꿀 수 없다고 말이다.

 

이러한 생각이 포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뀌지 않으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원하는 결혼을 해주지 않겠다는 나름의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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